조홍기의 선교음악편지-음표 너머의 이야기 ‘메시아’ in Africa
- dallgox08
- 5월 11일
- 5분 분량

헨델 ‘메시아’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사순절 부활절에 맞추어 공연하느라 1부 ‘탄생’ 부분과 2,3부의 좀 지루한 부분은 빼고 발췌 연주했다. 작년처럼 오케스트라와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AIM 음악대학의 학생들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온 지휘자들과 성가대원들까지 함께하여 제법 덩치가 크고 파트별 밸런스가 맞추어진 Community Choir는 청중들에게 특별한 울림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날아온 베이스 솔리스트까지 함께해, 음악적으로 풍성한 배음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수준 높은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보람이 컸다.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의 음악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발걸음 속에서 이 땅의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공연을 본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정도 수준의 연주는 학교 강당에서 하기엔 너무 아깝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공연장을 더 신중히 선택했더라면 AIM 학교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국립극장은 피아노도 없을 정도로 시설이 열악하고, 클래식 공연이 많이 열리는 쉐라톤 호텔은 대관료가 너무 비쌌다. 그래도 도전해 볼 만한 기획인데 여기는 아직 문화 기획과 예술 경영에 대한 마인드가 많이 부족하다. 간혹 재즈 공연은 20만 실링(월평균 임금 60만 실링 – 한화 20만 원) 이상을 받고 성황리에 진행되기도 하는데, 클래식도 좀 더 전략적이고 공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시작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처음 연습을 시작할 당시부터 괜찮은 공연장에서 하자는 뜻은 모아졌는데, 할 만한 곳은 모두 대관의 어려움이 있었다. 작년에 우리 학교 오케스트라와 하이든의 ‘전쟁 미사’를 협연했던 가톨릭 성당도, 우간다 내의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을 가진 성공회 성당도, 우간다 국제학교 강당 등 모두 좋은 공간인데 사용이 불허되어 하는 수 없이 키보드와 피아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전자 오르간이라도 사용했으면 그래도 괜찮았을 텐데, 돈이 없어 오르간도 못 빌린다 하고…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감당하면서 지난해처럼 속상한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또 한 번 무너져서 공연 전에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여긴 아프리카니까’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위로했다.
연습 일정은 곡의 난이도에 따라 날짜별로 연습 순서를 정해 연습의 강도를 조절하게끔 치밀하게 짰다. 특히 마지막 곡인 ‘Worthy is the Lamb’과 ‘Amen’은 고난도의 대위법적 구성으로 된 곡으로 집중 연습이 필수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오디션’이었고, 연습 시작 때부터 오디션을 공지했다. 마지막 주 오디션을 통해 테너 5명과 베이스 3명이 공연에서 제외될 위기에 처했지만, 다음 날과 그다음 날, 두 번의 재시험 기회를 통해서 마지막에는 모두가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35명 합창단원 중에 성악 전공은 4명이고, 나머지는 여타 음악 전공이 반, 아마추어가 반 정도다. 무대에서 대곡을 정교하게 잘 연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한 명이라도 이탈하지 않게 잘 가르쳐서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 내가 생각한 가치인데, 이게 달성되어 마음이 흡족했다.
사실, 연주회를 하기 전까지는 나조차도 이 공연이 얼마나 좋은 연주가 될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주 후에 학생들 중에서 일생에 이런 훌륭한 음악을 연주하게 되어 너무 감동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보람을 느꼈다. 한 외국인 교회 목사님은 공연 후 무대 쪽으로 와서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신의 음악이 내 영혼을 울렸습니다.” 그 한 마디가 그간의 모든 고생을 잊게 했다. 음악을 통해 이 땅과 소통했고, 음악을 통해 나의 사명을 다시 확인했다.
공연을 마치니 연습 때의 어려웠던 기억들이 데자뷰 되었다. 금요일 5시 반, 리허설을 위해 우버 택시를 타고 성가대원용 악보를 모두 들고 성당에 도착했다. 구덩이가 수도 없이 파인 도로, 차선도, 신호도 없는 무시무시한 교통 흐름, 창문을 두드리며 구걸하는 아이들, 그리고 마구 끼어드는 오토바이, 자동차, 사람의 뒤엉킴. 이 모든 혼란을 뚫고 도착한 연습실에는 피아노조차 없다. 지휘자를 포함해 3명만 앉아 있었고, 시간이 한참 흐르자 15명 정도가 모였다. 예정보다 30분 늦게 시작한 연습은 피아노도, 키보드도 없는 방에서 튜닝 포크 하나로 음을 잡아가며 ‘메시아’를 불렀다. 지휘자용 보면대도 없어서 악보를 손에 들고 흔들어댔다. 반세기 전, 한국 시골 교회에서 풍금 하나 놓고 찬송가를 불렀던 그 시절이 떠오르며, 왜 이런 수준의 성가대가 우리 학교 합창단과 함께 <메시아>를 공연하기로 한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 헛웃음만 나왔다.
우간다에서 가장 큰 가톨릭 교회 중 하나인 Christ the King Church 성가대와의 합동 연습은 이렇게 시작했다. 성가대만 6개, 주일 미사 7회, 주중 연습 3회를 진행하는 대규모의 교회인데, 제대로 된 음악 시설은 전혀 없었다. 대리석 조각품이나 스테인드글라스, 멋진 천장화 같은 성당의 예술적 장식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교회처럼 극도로 단순한 내부 구조에, 신앙의 본질에만 집중하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했다. 인구의 40%가 가톨릭 교도인 이 나라에서 대궐같이 으리으리하게 지어놓은 부자들의 대저택들과 비교되는 초라한 교회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자 저택들 바로 옆에 양철판이나 흙으로 대강 만들어 겨우 잠만 잘 수 있는 움막집들이 떠오른다. 내가 가본 어떤 가난한 나라의 대표 성당이 이 정도로 교회 장식이 없는 곳은 본 적이 없거니와, 교리나 예전을 중시하는 가톨릭 성당의 미사를 드리는 장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가대는 놀라웠다. 40여 명의 단원 중에 결국 연습에 꾸준히 참석한 6명만 최종 참여하였지만(여기도 출석 1/4 체크와 오디션을 진행하였다), ‘메시아’를 이미 여러 차례 연주한 경험이 있었고 음악적 설명이나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해 주었다. 한 번만 불러주면 파트를 이어받아 곡을 끝까지 이어가는 능력은 참 대단했다. 성가대원들은 흑진주 같은 눈빛으로 음악을 배우는 데 열정을 다했고, 내가 노래의 시범을 보이면 금세 따라 했다. 그들의 눈에는 배움의 열망이 가득 있었고, 나는 그 열망 속에서 나의 존재 이유를 또다시 확인했다.
첫날 연습은 “우리를 위해 나셨다”로 시작했다. 손기호를 통해 프레이징을 쉽게 설명하고, 멜리스마까지 시범을 보이며 가르치자 잘 따라왔다. 영어로 부르는 메시아는 모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아티큘레이션과 딕션은 많이 부족하여, 다음 시간엔 발성과 발음 중심의 훈련을 계획했다. 연습 마지막에 ‘한 곡을 더 한다면 무슨 곡을 하고 싶냐’고 묻자 가장 어려운 「Worthy is the Lamb」을 선택했다. 그것은 오라토리오 전곡을 해본 아마추어들의 자신감이었는데, 실제로 중간중간 프레이즈의 시작 음만 제대로 소리 내 주면 그런대로 잘 따라오는 기본기를 가진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연습이 끝나고 땀에 젖은 몸으로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 금요일 저녁 밤 8시. 우간다답지 않게 28도의 무더운 날, 물 한잔 없이 두 시간을 쉼 없이 연습했는데도 끝나고 누구 하나 “밥 먹자”는 말 없이 각자 흩어지기에, 나도 우버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길거리는 그저 않아도 엉망인데 대통령까지 지나간다고 교통이 통제되면서 한참을 길에 서 있었다. 배도 고프고 목이 마른데 거리에 구운 옥수수와 바나나를 파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내릴 수도 없고 위생 걱정에 사 먹을 수도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10시, 근처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아서 마침 방에 남아 있는 바나나와 비상식량으로 챙겨 두었던 과자 한 봉지를 허겁지겁 먹고, 식은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몸은 무척 고단했지만 마음은 무언가에 충만했다. 음악을 통해 이곳 사람들과 영혼을 나눈 느낌과 음악으로 마음이 함께 이어진 느낌인 것 같았다. 코다이 손기호나 재미있는 음악 워밍업을 다음 시간에 가르쳐야겠다고 계획하고, 아티큘레이션과 딕션, 그리고 발성 훈련을 차근히 준비해야겠다고 메모했다. 대원들이 부르자고 했던 어려운 곡들을 가르치기 위해 잘 준비해 놓아야만 그들의 도전 정신에 만족을 주고 곡을 소화해 내는 기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성가대는 전체 연습 일정이 끝날 때까지 10명도 참석하지 못했고, 연주 날 리허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오디션을 보았기에 마지막에 무대에 세우긴 했지만, 이런 것이 바로 아프리카 사람들의 무책임과 체계적인 거버넌스의 부족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깝고 마음이 썩 안 좋았다.
아프리카에서 교수이자 지휘자로, 그리고 문화의 다리를 놓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에는 부족한 여건 속에서도 가르치는 보람과 기쁨으로 모든 피로를 잊고, 그 속에서 사명을 다시금 깨달아 가는 구도자의 모습을 조금씩 찾고 있다. 이번 공연을 통한 모든 경험은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동시에 답을 얻는 과정이었다. 시작한 마음이 끝까지 변함없이 갈 수 있고 또 그 길을 위해 모든 것이 잘 예비되기를 순간순간 기도하게 한다. 음악으로 치유하고, 음악으로 연결하고, 음악으로 의미를 전하는 이 여정은 앞으로 계속된다.
글 조홍기
(사)한국코다이협회 이사장
(사)한국국제합창협회 이사장
전문합창단 서울코다이싱어즈 예술감독
Afirica Institute of Music 교수
* 월간 리뷰, 그리고 '리음아트&컴퍼니 블로그'에 올라온 본문을 게재합니다
Comments